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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순교성지: 단풍 벗 삼아 신앙선조들 순교정신 묵상 16.10.24
  • 남한산성
  • 조회수 : 1101
[즐거운 여가 건강한 신앙] 남한산성 순교성지
 
단풍 벗 삼아 신앙선조들 순교정신 묵상
 
 
- 박해 당시 순교자들 시신이 버려졌던 수구문.
 
 
서울 사는 사람 중에 남한산성 가보지 않은 이가 얼마나 될까.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남한산성이 가톨릭성지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얼마나 될까. 역시 많지 않을 듯 싶다.
 
17세기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게 굴욕의 패배를 맛본 남한산성, 서울에서 동남쪽으로 24km 떨어진 광주시 중부면에 있는 남한산성으로 길을 떠났다.
 
남한산성 중앙주차장에 내렸더니 조각구름 떠다니는 맑고 푸른 하늘이 기자를 반겼다. 같은 하늘인데도 서울 하늘과는 어찌 그리 다른지…. 평일 낮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차도 많고 사람도 많다.
 
계절의 여왕 5월과 10월에는 콧바람(?)을 쐬어야 1년을 무사히 넘길 수 있다는 우스개 소리가 생각났다. 괜히 마음이 들뜬다. 그러고 보니 올 가을 첫 나들이다.
 
신자인 만큼 먼저 성지부터 찾을 일이다. 남한산성 순교성지는 중앙주차장과 거의 붙어있다시피 가깝다. 찾기 힘들면 고개를 들어 십자가가 달려 있는 건물을 찾으면 된다. 먼저 남한산성이 성지가 된 사연을 살펴보자.
 
"…1626년에 광주 유수의 치소와 마을이 성안으로 이전되면서 남한산성은 박해와 밀접한 관련을 맺게 됐고, 박해 때마다 신자들이 이곳으로 끌려와 순교함으로써 잊을 수 없는 치명터가 됐다. 신유박해(1801년)를 시작으로 기해박해(1839년)와 병인박해(1866년)에 이르기까지 약 300명의 신자들이 순교했는데, 안타깝게도 그 행적과 이름을 알 수 있는 이는 극히 적다…."(순교자 현양비 비문 중에서)
 
순례객을 맞는 현양비를 지나 성지에 들어서면 바로 사무실이 보이고, 사무실 뒷편 동산으로 조금만 더 올라가면 야외 미사터가 나온다. 오색 단풍나무 아래 뒹구는 낙엽을 보니 가을은 가을인가보다. 미사터를 둘러싸고 있는 십자가의 길 14처를 한 바퀴 돌았다. 7처 십자가가 반쯤 옆으로 기울어져 있다. 지난 여름 태풍에 넘어졌나? 팻말을 보니 예수님 넘어지심을 묵상하기 위한 것이니 세우지 말란다. 의미가 새롭다.
 
- 남한산성 북문. 구산에서 잡혀온 김성우 안토니오 성인 동생들 옥바라지를 위해 집안 식구들이 눈물을 흘리며 드나들던 문이다.
 
 
남한산성 곳곳에 흩어져 있는 신앙 유적들을 찾아보려면 순례 코스가 담긴 성지 안내도(아래 그림)를 참조하면 된다. 목요일(오후 1시 30분)에는 성지 전담 박경민 신부가 직접 순례단을 이끌면서 성지 구석구석을 설명한다. 개별적으로 순례하는 이들은 성지 사무실에 비치된 성지 소개 팸플릿을 길잡이 삼아 나서도 큰 어려움은 없다.
 
성지에서 나와 동문을 향해 걸었다. 길 양편으로 식당들이 줄을 잇는다. 메뉴도 대부분 비슷하다. 20분쯤 걸었을까, 찻길을 내느라 가운데가 잘린 산성 왼편으로 동문이 눈에 들어왔다. 순교자들의 시체가 쌓였던 수구문은 길 오른편 남한산성 표지석 바로 아래에 있다.
 
살아서 동문으로 들어왔던 순교자들은 죽어서 수구문에 버려졌다. 동문으로 들어온 순교자들은 아마도 수구문에 쌓인 동료 순교자들의 시신을 봤을 것이다. 자신의 운명도 저러할 것이라고 예감하는 그들의 심정은 과연 어떠했을까….
 
발걸음을 다시 남한산성의 중심인 산성로터리로 돌렸다. 남한산성에서는 어디를 가든 로터리가 출발점이자 종점이 된다. 주차장도 모두 로터리 주변에 몰려 있다.
 
순교자들이 심문을 받던 행궁(좌승당)을 거쳐 수어장대로 향했다. 행궁은 복원 공사가 한창이라 어수선했다. 행궁에서 수어장대까지 1㎞ 남짓은 소나무가 울창한 오르막길이다.
 
온 산을 붉게 물들이는 단풍을 벗 삼아 한 발짝 한 발짝 걸어 올라갔다. 오가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은 호젓한 길이다. 길 한가운데서 재잘거리던 까치 떼가 사람을 보더니 훌훌 날아간다. 좀 쉬었다 가고 싶을 만한 지점에는 어김없이 나무벤치다. 길에서 별로 안 보이던 등산객들이 쉼터에는 빼곡하다. 하긴 기를 쓰고 올라갈 이유가 없지 않은가.
 
- 인조 때 세워진 수어장대. 일종의 지휘소다.
 
 
쉬엄쉬엄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는 사람들 모습이 정겹고 여유롭다. 걷기에는 더 없이 상쾌한 길이다. 10월에 오니 가을 단풍이 금상첨화다. 오르막인지라 걷는 것이 조금은 힘들기는 하다. 평지에서 걷는 1㎞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래봐야 땀이 살짝 배어 나오는 정도다. 드넓은 남한산성 곳곳이 이런 길이다.
 
남한산성의 간판격인 수어장대에 오르니 산성 너머 아래로 서울이 한눈에 들어온다. 안개 탓인지, 김이 서린 안경처럼 조금은 희뿌옇다. 한 발짝 떨어져 내려다보는 삶의 터전이 새삼스럽다. 몇 시간 후면 돌아갈 곳이지만 지금은 그냥 다른 세상인양 바라만 보고 싶다.
 
수어장대에서 서문과 북문을 지나 산성로터리로 걷는 길은 계속 내리막이라 걷기가 한결 수월했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다는 것은 역시 진리다. 인간사도 그러할 것이다. 산등성이를 두르고 있는 성벽을 따라 걷는 길은 무척 넓었고, 넓은 만큼 사람도 많았다. 왼쪽은 성벽, 오른쪽은 울창한 숲으로 뒤덮인 길이 계속 이어졌다.
 
북문에서 산성로터리로 내려오는 길 좌우에 늘어선 음식점들을 그냥 지나치기가 어려웠다. 꼬박 3시간을 걸은 노곤함과 해질녘 노을을 안주 삼아 동동주 한 잔을 들이켰다. 어디선가 낙엽 태우는 내음이 가을의 정취를 자극했다. 가을은 냄새로도 오는 모양이다.
 
성지에서 만난 박경민 신부는 온 가족이 함께하는 데 남한산성처럼 좋은 곳도 없다고 자랑했다. 국내에 흔치 않은 소나무숲 산행길이 여러 개 있고, 가을 단풍도 절경인 데다가 경기도 유형문화재 1호부터 6호까지 모두 있는 문화 명승지가 바로 남한산성이라는 설명이다.
 
박 신부는 "주말에는 클래식, 국악, 풍물 공연 등 문화행사도 다채롭게 열린다"면서 하루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겁게 보낼 수 있는 남한산성을 꼭 한 번 찾을 것을 권했다. 더불어 신자라면 성지에 들러 순교자들의 고귀한 신앙을 묵상하길 바란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아직 남한산성에 가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이번 가을 낙엽 다 떨어지기 전에 한 번 찾아보는 건 어떨까.
 
 
- 남한산성 서문에서 북문으로 이어지는 성벽을 사이에 두고 양편으로 소나무 숲이 울창하다.
 
 
문의
031-749-8522, www.nhss.or.kr, 남한산성 순교성지
031-743-6610, www.namhansansung.or.kr, 남한산성도립공원
 
 

 
[평화신문, 2010년 10월 31일, 남정률 기자]